인터뷰

사인반을 수집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

#음악 #정신건강 #치유 #사인반 #취미
성승모 휴앤힐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부캐(부 캐릭터)가 본캐(본 캐릭터)를 뛰어넘는 시대가 왔다.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 외의 시간을 취미 활동으로 보내고 있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간다. ‘사인반 수집’이라는 취미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성승모 휴앤힐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도 그렇게 자신만의 부캐를 만들어 왔다.
글. 김민주   사진. 이정수
오사카에서 사인반의 매력에 빠지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에겐 ‘열정’이 느껴진다. 그 열정은 반짝거리는 눈을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3월의 어느 날, 인터뷰를 통해 만난 성승모 원장의 눈빛이 그러했다. 그가 지금까지 모아온 2000여장의 LP 음반과, 언론매체를 통해 꾸준히 게재해온 사인반과 관련된 칼럼은 취미생활을 향한 그의 열정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성승모 원장이 사인반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여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를 변화시킨 레코드전’관람이었다. 전시장에는 그가 좋아하는 헤비메탈 그룹 딥퍼플의 전 멤버 사인반부터, 우리나라 교포가수인 미소라 히바리, 그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 등 여러 가수의 LP가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성승모 원장이 가장 큰 매료를 느꼈던 것은 LP의 재킷 디자인이었다. 그에 따르면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기념 음반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설치미술가로 주목받고 있는 서도호의 작품이 담겨있을 정도로 LP 재킷 디자인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성승모 원장은 화려한 음반 재킷이 대규모로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LP 재킷이 격조 높은 시각예술 작품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가나자와공업대학은 LP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변화시킨 레코드전 전시장에서 제가 관람했던 LP 역시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음반 중 일부를 전시해 놓은 것이었지요. 사실 대학에서 LP를 수집한다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개인 차원에서라도 LP를 수집하고 탐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LP만을 보관하기 위한 장을 만들어서 제가 아끼는 사인반을 눈에 잘 띄게 진열해서 매일 감상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삶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LP에는 제작 날짜가 표기되어 있다. 뮤지션의 친필 사인에도 대개 날짜가 함께 적혀 있다. 성승모 원장은 LP에 적혀 있는 날짜를 보며 그 시기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가족과 친지들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자기 역사 연표’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처럼, 성승모 원장에게는 LP 수집이 자신의 역사 연대표의 빈칸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일련의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LP를 모으고 사인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을 한번 회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열렬히 좋아했던 가수 혜은이가 떠오르더군요. 그 뒤로 혜은이가 낸 LP를 하나둘씩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3~4년 전 대학로 소극장에서 열린 혜은이 콘서트 현장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한 번은 혜은이가 1977년 11월에 발표한 크리스마스캐럴 LP를 구해 들고 갔는데요. 공연이 끝난 후 혜은이로부터 사인을 받았는데 혜은이가 ‘요즘 구하기 힘든 LP’라며 반가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음반이 발매된 1977년 당시 홍수환 선수가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 5기’의 신화를 써 우리 모두가 행복했던 그 당시의 기억도 떠오르게 됐습니다. 어쩌면 LP는 단순히 연예인의 작품을 넘어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하나의 역사적인 유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웃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인터뷰가 진행될 무렵 성승모 원장은 가장 아끼는 LP라며, ‘금수강산’(아세아레코드, 1968)을 꺼내 들었다. 금수강산처럼 1980년대 이전에 개봉했던 국내 영화의 주제가를 담은 OST 음반들은 희귀한 아이템에 속한다. 보통 음반 수집가가 매기는 가치는 어떤 배우가 재킷을 장식했고 누가 부른 주제가인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이 LP의 경우 금수강산의 주연배우인 윤정희의 모습이 재킷에 실려 있고, 직접 주제가까지 불렀기에 국내 영화 OST 음반 중 최고가에 거래된다. 단 한 곡 수록된 윤정희의 노래는 음반으로 발표된 유일한 영화 주제가이기도 하다.
“제가 이 LP를 소장하게 된 계기는 저의 고려대 대선배이신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 실장님의 음반을 수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LP에는 이규항 아나운서님의 곡인 ‘무지개 여인’이라는 곡이 들어있는데요. 이규항 아나운서님도 이 음반은 처음 보신다고 하실 정도로 굉장히 귀한 음반입니다. 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포기하지 않고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자주 찾고 있었는데, 작년 추석 연휴에 기적적으로 이 LP의 재고가 있는 곳을 찾아냈습니다. 시세 대비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는 데 성공해서 저에겐 뜻깊은 추석 선물이 되었습니다. 재킷 모델이신 윤정희 님으로부터 사인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아쉽지만 이규항 아나운서님이 이 음반에 직접 친필 사인을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며
자신이 좋아하는 사인반을 소개하며 누구보다도 들뜬 표정이 역력해 보였던 성승모 원장. 그를 통해서 취미생활은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주고, 치유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또 그는 중년에게 취미생활은 삶의 재미와 원동력을 찾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수집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취미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간된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라는 책(박건호 지음) 표지에는 ‘평범한 물건에 담긴 한국근현대사’라는 소제목이 함께 적혀있습니다. 일기장, 편지, 영수증 등 개개인의 삶과 일상이 담긴 물건들이 역사책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굳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그런 기념품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수집해서 소장하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아카이브’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승모 원장은 지금보다 더 많은 LP와 사인반을 수집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예전에는 사인반이라면 어떤 음반이라도 챙기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음악성이 뛰어나고 진정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반 수집에 치중하고 그 음반에 직접 사인을 받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음반 수집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 열정을 보여준 성승모 원장. 그는 음악으로 자기 자신의 휴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환자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애쓰는 진정한 휴식과 힐링의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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