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여행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도 사랑은 숨길 수 없다 <연모> 촬영지 ‘서천’

‘평범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 보통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함께 미래를 꿈꾸는 일. 쉬운 일처럼 보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를, 드라마 <연모>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글. 김효정   사진. 문정일
왕이 된 여자, <연모>
사진 : KBS 드라마
사진 : KBS 드라마
드라마 <연모>는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로 버림을 받았던 왕손, 담이의 이야기다. 하지만 오라비 세손 이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운명의 장난처럼 담이는 남장을 통해 세자가 된다. 그렇게 사람들을 속이며 이휘의 삶을 사는 담이. 이휘(박은빈 분)은 여자의 삶을 포기하고 세자의 역할을 해나간다. 그러다 이휘의 스승(사서)으로 입궁한 정지운(로운 분). 그는 이휘가 담이로 살았을 때 만나 짧은 정을 나눴던 소년이었다. 다시 말해 첫사랑이었던 것.
사진 : KBS 드라마
세월이 흐른 뒤 세자와 스승으로 만난 둘은 이상한 기류에 휩싸이며 다시 한 번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한편, 왕실 숙부인 창운군(김서하 분)이 죄 없는 여성 노비를 살해하면서 분노한 세자가 숙부를 징계한 일이 있었다. 숙부는 세자의 압박으로 노비의 무덤에 사죄의 절을 올리게 되지만, 조카에게 모욕을 당해 자결하겠다는 유서와 함께 변사체로 발견된다. 정치 사주를 받은 유생들은 궁궐 앞으로 몰려가 세자 폐위를 요구하고, 폐세자가 되어 궁궐을 떠나게 되면서 정지운에게 자신이 이휘가 아니라 담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
두 사람의 해피엔딩만 남았을 줄 알았지만, 왕(이필모 분)이 독살당하면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고 결국 이휘는 다시 궁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정치적 압박에 의해 왕의 자리에 오른 이휘,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사진 : KBS 드라마
“고마웠습니다. 정 사서 덕분에, 단 하루라도 행복할 수 있었으니.”-이휘의 대사 고풍스러운 정원, ‘문헌서원’
충남 서천에서 드라마 <연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휘와 신하들이 함께 걷던 그 아름답던 담벼락은 바로 문헌서원. <연모>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문헌서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서원의 의미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사학이다. 조선 초기에는 지방의 향교, 중앙의 사부학당, 성균관으로 이루어지는 관학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고려 말기부터 소규모 서재의 사학도 인정이 되었고 국가에서 장려하기도 했다. 문헌서원은 고려말 대학자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5년 효정사라는 사우를 짓고 두 선생을 배향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1610년에 한산 고촌으로 옮겨 복원하고 다음해인 1611년에 ‘문헌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평일에 찾아서인지, 문헌서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주위를 의식하지도 않고 조선시대의 학자가 된 듯 천천히 걸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그곳을 담는 기분이었다. 가을의 끝, 단풍나무가 낙엽이 되었고 바닥에 붉은 이불을 깐 듯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고즈넉한 공간에 깨끗하게 관리된 서원은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
가을에는 이처럼 붉은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여름에 찾았다면 흐드러지게 핀 배롱나무가 우리를 반겼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큰 나뭇가지가 휘어지게 핀 배롱나무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었다. 배롱나무 꽃은 이휘가 좋아하던 것으로, 잠시 정지운이 이휘 곁을 떠났을 때 서신과 함께 건네던 꽃이기도 하다.
다시 보는 생태계 ‘서천 국립생태원’
문헌서원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서천 국립생태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생태원으로 한반도의 생태계를 비롯해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의 세계 5대 기후와 그런 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과 식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살아있는 5,300여종의 동식물을 통해 다양한 생태계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
멀리서 봐도 웅장한 에코리움 건물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국립생태원의 메인 전시관인 에코리움은 각 기후별 대표 식물과 어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상설 주제 전시관을 지나 열대관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열대관은 덥고 습한 열대우림지역을 재현한 열대의 식물 700여 종과 강이나 바다에서 서식하는 130여 종의 어류, 12종의 양서류와 파충류를 만나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국적인 식물이 많아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포토 스팟이 되기도 한다. 사막관은 건조하며 겨울에도 10℃ 이상 유지되는 더운 사막지역을 재현했다.
300여 종의 선인장과 다육식물, 6종의 파충류와 2종의 포유류가 볼거리를 더한다. 지중해관은 7종의 양서류와 3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여름은 건조하고 겨울은 온난 다습한 지중해성 기후를 재현하고 있다. 또 온대관은 제주도의 난온대림의 한반도 산악지역을 재연해 120여 종의 제주도 곶자왈 식물과 40여 종의 어류, 7종의 양서류와 파충류를 볼 수 있다. 실외로 나가면 수달과 맹금류를 볼 수 있는데, 방문했을 당시에는 AI바이러스로 인해 맹금류는 볼 수 없었다. 마지막 극지관에서는 한반도의 가장 추운 개마고원을 시작으로 타이가, 툰드라, 극지, 세종기지 전시 등 남극과 북극에 서식하는 펭귄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가볍게 돌아보기 좋은 ‘서천 식물예술원’
서천 여행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서천 식물예술원도 괜찮다. 150여종의 연꽃과 창포, 붓꽃, 그리고 덩굴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이곳은 김재완 향토문화연구회장이 가꾼 사유지로 다양한 분재와 나무, 오랫동안 수집해온 옹기 등으로 꾸며놓았다.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비밀의 정원처럼 독특한 공간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준다. 연꽃정원과 미로정원, 분재정원, 그리고 옹기전시장으로 조성된 이곳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그냥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다. 특히 반려견과 여행 중이라면 함께 방문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은 짧다.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 <연모>를 보면서, 더욱더 내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평범한 일상도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타인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더 나답게 사는 길을 걸어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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