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감독 고재열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고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언택트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 속에서도 ‘컨택트’를 강조하며 기존의 여행산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한 사람이 있다. 고재열 여행감독은 여행 속에서 만들어지는 느슨한 연대를 통해 깊은 인연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다.
글. 김민주   사진. 고석운
설렘을 설계하는 일, 여행감독
20년 동안 시사저널과 시사IN에서 일을 한 그는 뼛속까지 언론인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제2의 인생에, 그것도 팬데믹으로 인해 불모지가 되어버린 ‘여행’이라는 산업을 도전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물음에 고재열 감독은 “언택트의 시대가 되면 그 반작용으로 컨택트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또 그는 6개월 동안 다양한 콘셉트의 여행, 20여 개가 넘는 소모임 구축, 원데이 클래스와 공동 구매를 진행하면서 회사라는 울타리를 넘어 진정으로 홀로설 준비를 철저히 해 나가고 있었다.
여기서 ‘여행감독’이란 여행자 플랫폼을 설계하고 기획하는 일이며 고재열 감독이 직접 창직한 직업이다. 쉽게 말해 여행감독은 여행할 사람을 모으고 현지의 전문가를 구성해 큐레이션까지 더하는 일이다. 그는 ‘90년대 학번을 위한 여행 연합 동아리’를 만들어 느슨한 연대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 여행이라는 담론은 2030세대, 특히 20대에 포커싱 되어 있어요. 실제로 대부분의 여행 정보 역시 20대의 취향에 맞춰졌는데, 사실 4050세대가 원하는 여행은 이러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거든요. 제가 여행클럽을 만든 이유도 마음은 한비야인데 막상 여행을 하려면 몸은 하나투어 여행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웃음) 우리 세대를 위해 만들게 되었어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여행이 미리 기획되어 있다면 같이 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게 되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등록해온 멤버들이 1500명 정도 있고요. ‘좋은 여행을 계속 만들어달라’라는 취지로 1년에 30만 원씩 후원금을 지불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앞서 저와 여행을 다니면서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개인의 취향을 가득 담은, 여행 큐레이션
고재열 여행감독은 여행업의 본질이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비자 발급, 항공, 언어, 교통 등의 서비스는 해외여행 위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에 팬데믹 상황 속에서 여행은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고재열 감독은 국내여행에 포커싱을 두면서 솔루션이 아닌 ‘큐레이션’으로 여행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보통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얘기할 때와 국내여행을 얘기할 때 사뭇 다르거든요. 해외여행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와 같은 에피소드 위주로 얘기한다면 국내여행은 기승전 ‘맛집’으로 끝나요. 국내로 1박 2일 정도 여행을 간다면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오겠다’라는 심리가 생기는 거죠. 이러한 니즈를 토대로 지난해 집합금지 시행하기 전 ‘팔도 고기 대탐험’이라는 여행을 기획했는데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어요. 고기투어 라인업을 짜고 여행자들과 함께 그 지방에 유명한 고기와 페어링 된 전통주도 먹는 여행이죠. 이처럼 굳이 이곳저곳 따져볼 필요 없이 나의 취향을 반영한 상품이 있다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시간을 들이고 돈을 지불할 의사가 되어있어요.”
현재 고재열 감독은 거리두기 완화가 되면 ‘제철 서울여행’이라는 여행콘텐츠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에 있는 고급호텔과 문화예술을 연결시키고, 연예인들이 자주 가는 청담동 미용실과 미슐랭 레스토랑을 즐기는 일종의 프리미엄 여행 서비스다. “여행의 영역에서는 디테일한 요소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행사와 콜라보를 해야 해요. 우리가 기획한 여행이 실제로 구현이 가능한지 여행사 쪽에 계속 물어보며 판단해 나가는 거죠. 한 마디로 수제패키지여행을 만드는 건데 처음부터 새롭게 짜기보다는 기존의 여행사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서 튜닝해 나간다고 보시면 돼요.”
여행지에서 생각해보는 ‘생애전환기술’
한편 고재열 감독은 여행 기획에 이어 ‘캐리어도서관’이라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캐리어도서관은 동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캐리어를 주워 책을 담아 기증하는 프로젝트다. 기자 시절 그는 헌 책을 모아 책이 꼭 필요한 곳에 전달한다는 ‘기적의 책꽂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캐리어도서관이라는 바퀴 달린 책장을 만들고 자주 가는 여행지에 기증한 것이다. 작년에는 캐리어 1000여 개와 2만 권의 책을 통영 욕지도, 평창의 산너미 목장, 태안 백리포, 문경 단산 활공자 등에 기증했다. “도시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여행지에서도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가방에 책 여러 권을 따로 챙길 필요 없이, 언제나 방문해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끝으로 고재열 감독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많은 4050세대에게 여행을 떠나볼 것을 추천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일상과 단절하다 보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기에, 한 우물에서만 살던 우리에게 여행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호흡을 끊어주고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할 때 감춰져있던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법, 막연한 은퇴를 앞두고 생애전환기술을 습득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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