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흔히 아이들을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때로는 어른들에게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주고,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깨달음을 남기기도 한다. 이번 쉼표 여행에서는 각박한 삶 속에서 하루하루 지친 이들에게 희망의 꽃을 피워주던, 권정생 선생의 권정생 동화나라를 찾았다.
글. 김민주 사진. 고석운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마음
청량리역에서 KTX 기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달린 끝에 안동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린 후 차를 타고 30분 정도 더 들어가면 일직면 한 시골마을에 폐교된 초등학교를 고쳐 지은 권정생 동화나라가 보인다. 이곳은 권정생 선생에 관한 기록과 주요 작품을 전시한 문학관으로 선생이 지으신 주옥같은 작품뿐만 아니라 유언장, 책상, 일기장, 그리고 강아지 똥과 엄마 까투리 등의 조형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전시관 복도에도 선생님의 연보와 일대기 그리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전시관 내부가 그의 흔적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하지만 민들레 싹은 그런 강아지 똥을 ‘거름이 되어 내게 예쁜 꽃을 피워줄 소중한 존재’로 바라봤다. 민들레 싹에게 강아지 똥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런 귀한 존재인 것이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은 이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것도 다 쓸모가 있다고, 세상 무엇이든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느 날 선생님은 처마 밑에 버려진 강아지 똥이 비를 맞아 흐물흐물 그 덩어리가 녹아내리며 땅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런데 강아지 똥이 스며 녹아내리는 그 옆에서 민들레 꽃이 피어나고 있더랍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그 모습을 보고 “아, 저거다!”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며칠 밤을 새워 강아지 똥 이야기를 썼답니다. -강아지 똥, 이재복 아동문학평론가 발췌-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받친 삶
권정생 선생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고통과 상실이 느껴져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는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랜 시간 아픔 몸을 이끌며 오직 책 읽기와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특히 선생의 삶의 배경이 묻어난 작품 <몽실 언니>는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몽실이의 이야기를 담아 힘들게 그 시대를 살아왔던 분들을 떠오르며 위대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아동 문학의 대가인 권정생 선생은 <강아지똥>, <몽실언니>, <엄마까투리> 등 독자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머무른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앞둔 그 순간까지 가난 때문에 고통받고 굶주린 아이들을 떠올렸고, 평생을 단칸살이 오두막집에서 소박한 삶을 살다가 모아둔 10억 가량의 인세를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게 살다가 죽기를 꿈꾼다. 나로 인해 세상이 바뀌진 않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고 간다면 그것 역시 성공한 삶을 살다간 인생일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연약하고 순수한 아이들을 위해 살다간 권정생 선생을 떠오르며 방문한 <권정생 동화나라>. 아름다운 그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깊게 들여다보고 싶을 때, 나는 또다시 안동을 찾을 것이다.
“재산은 모두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들과 중동, 티벳, 아프리카 어린이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 2007년 3월 31일 오후 6시 10분 권정생 - 권정생 선생 유언장 일부-
고즈넉한 낭만이 숨 쉬는 만휴정
서울로 올라가기 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만휴정’에 들렸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이 조선 연산군 6년에 지은 정자이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가 고애신에게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라는 명대사를 남겼던 바로 그 장소이기도 하다. 수풀 사이를 지나 계곡 너머 마주할 수 있는 만휴정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장관을 이루고 있고, 한 겨울에 방문하면 얼어붙은 계곡으로 인해 더욱 운치 있는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외나무다리에서 인생 샷을 남기는 것은 필수!
안동찜닭, 원조는 역시 다르네
보통 여행을 하면 그 지역의 전통시장은 꼭 가보는 편이다. 서울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지역 특산품 음식은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이날도 어김없이 안동의 전통시장인 ‘안동구시장’을 들렸고, 수많은 찜닭 집들 가운데 <백종원 3대천왕> 맛집으로 유명한 ‘중앙 찜닭’에 방문했다. 보통 식당에서 안동찜닭을 시키면 달거나 짠 경우가 많아서 즐겨먹지 않은 메뉴 중 하나였는데,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짜지도 않고, 쫄깃한 당면에 양념이 충분히 스며들어 지금까지 맛본 안동찜닭 중 단연 최고였다.
2월의 어느 날, 고요하고 평화로운 겨울을 만끽하고 싶어서 떠난 안동 여행. 뚝 떨어진 기온으로 인해 움츠러드는 요즘이지만, 봄이 오기 전 겨울의 낭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한 해 동안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을 준비한 이번 여행, 2021년 겨울도 이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