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해설가 한형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덕업일치(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의 꿈을 가슴속에만 품고 산다. 하지만 시대가 점차 바뀌면서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도 벌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오늘 <50플러스 인터뷰>에서는 은퇴 후 덕업일치에 성공한 한 남자, 오페라 해설가 한형철 씨를 만나보았다. 글. 김민주 사진. 고인순
은퇴 후 오페라 해설가로 우뚝 서다
30여 년 동안 금융직에 종사했던 한형철 씨는 은퇴 후 ‘오페라 해설가’가 되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그저 오페라가 좋아서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즐겼을 뿐인데, 오페라는 그의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를 안겨주었다. 물론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를 업으로 삼으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형철 씨지만 그런 그에게도 자신의 청춘을 다 받친 직장을 은퇴하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직장이란 우리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은퇴 후 속이 시원하다가도 뒤돌아서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한형철 씨도 어쩔 수 없었다. “보통 금융권 회사들은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년퇴직까지 5년 더 근무하는 대신 임금을 반으로 줄이거나, 그게 싫을 경우 조금 더 일찍 명예퇴직을 하는 거죠. 근데 생각해 보면 60살이 될 때 어차피 관둬야 할 작장인데 5년 더 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 뭘 할지 모르겠지만 일찍 정리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과감히 부딪혀보는 법을 택하게 된 거죠.” 55세의 나이에 은퇴한 한형철 씨는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무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금융전문 강사, 숲 해설가, 목공기술,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면서 제2의 직업을 찾기 위해 다양하게 도전했다. 그러다가 2007년 국립오페라단에서 클럽오페라 운영위원이 되어 해설 봉사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 “숲 해설가도 산에 올라가서 우리가 모르는 풀, 꽃,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주잖아요. 그리고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면 보고 지나치기만 했던 자연의 형상들이 다 새롭게 보이고요. 그때 떠올랐죠. ‘아, 숲 해설가가 있듯이 나도 오페라를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 오페라를 해설해 주는 오페라 해설가가 되어야 겠구나’라고요. 또 대학원 다니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입시학원 강사 일도 해봤는데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어요.”
대중적이어서 더 매력적인 오페라
그는 젊은 시절부터 오페라 음악에 매력을 느껴 오페라를 꾸준히 감상해왔다. 하지만 그가 오페라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 계기는 오페라가 매우 ‘대중적’인 음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가수가 부르는 아리아가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뚫고 귓가에 꽂힐 때, 그는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는 대중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왠지 어려울 것 같고 딱딱하고 격식을 갖추고 들어야할 장르라고 생각하죠. 근데 알고 보면 오페라는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으며 재밌고 접하기 쉽습니다. 야쿠르트 CM송으로 유명한 카르멘, 하이마트 CM송에 나온 리골레토를 듣고 나면 ‘저 곡이 오페라라고?’ 하실 거예요.(웃음)” 한형철 씨는 비록 비전문가지만 누구보다도 오페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진심이다. 그는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오페라에 대한 공부를 손에 놓지 않았고, 은퇴 이후 오페라 해설가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도 블로그에 다양한 오페라 작품 해설을 강의 교안 형식으로 꾸준히 올려놨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여러 지자체 문화센터, 배움관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서 진정한 오페라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강의가 취소되자 생각만 해왔던 출판 작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에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에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마치 독자들의 옆에서 이야기해주듯 구어체로 쉽게 작성하였고, QR코드를 넣어 영상도 직접 보실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독자 여러분들의 삶이 오페라를 통해 좀 더 풍요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인생 2막’
‘은퇴’라는 단어는 4050세대에게 불안과 걱정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기대수명은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나의 노후대책은 이대로 괜찮은 건지 착잡한 마음만 앞선다. 이에 한형철 씨는 은퇴를 준비하는 많은 직장인들에게 ‘20~30년 직장생활을 해 온 우리는 이미 재야의 고수들’이라고 격려했다. “내세우기가 쑥스러워서 그렇지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글로 정리해보세요. 나중에 훌륭한 강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직장에서 해왔던 일에 대해 정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분야의 정보가 필요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은퇴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해서 누구나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은퇴 후 오페라 해설가로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한형철 씨가 힌트를 주었듯이 이미 답은 우리의 삶 가운데 있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가장 설레고 또 잘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자신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인생 2막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닐까.
글. 한형철 / 디자인. 류혜경, J & jj 제이 앤 제이제이
누구나 익숙하게 오페라의 멜로디를 떠올리지만, 제대로 오페라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 오페라 관람을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말끔한 옷에 구두를 신고 봐야 하는 ‘고급문화’라는 인식일 것이다. 이에 저자는 오페라 애호가로서 굳이 차려입지 않아도 ‘작정하지’ 않고도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봐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기 위해 이 책을 준비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돼 있으며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분들이 꼭 알아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부터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등장인물, 스토리, 대표 아리아 등)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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