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규열 사진기자

디지털 전환과 함께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 편하게, 더 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가끔은 불편하고 낡은 옛것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이규열 사진기자는 오래된 인쇄물을 모으며 옛 시간 속에서 머물던 그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글. 김민주   사진. 고석운
백빈건널목을 거닐며, 19세기 감성에 빠지다
화려한 빌딩 숲 한가운데에 ‘땡땡’ 소리를 내며 기차가 들어온다.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화물열차가 통과하는 서울 용산구 백빈건널목이 ‘땡땡거리’로 불리는 이유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풍기는 이 골목에 19세기 사진 촬영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 바로 등대사진관의 대표 이규열 사진기자다.
“사진 일은 1995년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26년째 입니다. 주로 잡지 사진 위주로 촬영을 해왔고 지금은 잡지 중에서도 여행잡지에 주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 광고 사진 촬영도 겸하고 있고요. 물론 앞서 말씀드린 이러한 일들도 재미있고 뜻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디지털 사진에 대한 갈증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제 취향을 반영해 19세기 사진술을 이용한 습판 사진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습판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규열 대표는 취미생활에서도 그의 취향을 확연하게 엿볼 수 있었다. 빈티지하고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모으고 싶다고 말하는 이규열 대표. 그중 그가 가장 좋아하고 오랜 기간 수집해온 물건은 바로 해외에서 사들인 옛날 인쇄물이다.
여행 중 옛날 신문과 포스터에 매료되다
이규열 대표는 여행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해외 곳곳을 돌아다녔고 그때마다 현지 벼룩시장과 헌책방을 잊지 않고 방문했다. 제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업으로 삼다 보면 쉽게 질리기 마련이기에, 이규열 대표는 사진과는 거리가 먼 ‘활자’와 ‘삽화’에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탓에 사진이 담겨있는 인쇄물이 아닌 텍스트와 삽화가 그려진 옛날 신문과 포스터를 자연스럽게 수집하게 됐다.
“옛날 신문은 그야말로 제 취향을 100% 저격한 신기한 물건이었어요. 이미 그 당시에 사진 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와 함께 주요 사건이 그려진 삽화를 넣어 놨거든요. 오늘날의 신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그리고 오래된 책에서나 날 수 있는 쾌쾌한 종이 냄새 이런 것이 바로 옛날 인쇄물의 매력이 아닐까요.”
이규열 대표는 약 200~300점의 옛날 인쇄물을 가지고 있다. 그중 그가 가장 아끼는 신문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 삽화가 실린 「르 쁘디 주르날」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프랑스의 초청을 받아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는데 경복궁 근정전을 축소해서 만든 한국관의 모습과 이를 둘러보는 유럽인들, 한복을 입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삽화가 신문의 메인을 장식하였다.
“그 옛날 머나먼 서방 국가의 신문에 대한민국이 장식되었다는 것은 참 가슴 벅찬 일이에요.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시시때때로 바뀌곤 하잖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새롭게 바꾸는 것보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 많이 시도되었으면 좋겠어요. 옛것 중에서 아름다운 부분을 현대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코로나19 이후에도 수집생활을 계속되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자 그의 수집 생활에도 비상이 걸렸었다. 주로 해외에서 직접 옛날신문과 포스터를 구입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이베이 경매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규열 대표에 따르면, 처음엔 사이트에 올라온 물건이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늘어나더니 이제는 웬만한 건 거의 이베이를 통해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가끔 해외배송이 어려울 때에는 현지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주소로 보내고 나중에 다시 받기도 한다.
일이면 일 취미생활이면 취미 생활,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감각을 발휘해내는 이규열 대표.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꿈을 꾸며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옛날 인쇄물을 콘셉트로 삼아 카페와 레스토랑도 운영해보고 싶어요. 옛날 포스터 한 장만 벽에 걸어놔도, 옛날신문을 즐비하게 전시하기만 해도 멋스러운 인테리어가 될 것 같아요. 또 보는 이의 눈도 즐겁고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 인색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만 쫓기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우리는 현실에 안주한 채 ‘무탈한 오늘’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뿐인 인생 주어진 한 길로 직진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다채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이규열 대표처럼, 인생이란 때로는 무모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과감한 선택도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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