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살다보니 용을 쓴다고 될 일도, 또 맞닥뜨려 부딪치다 보면 안 될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끔 몸과 마음이 지칠 때면 여기, ‘호텔 델루나’에서 쉬어가는 건 어떨까?
글. 김효정 사진. 문정일
만월이가 다시 사랑하게 될까요?
어쩌다 보니, 이지은(아이유)이 나오는 드라마는 꼭 챙겨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지은을 좋아한다.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좋고, 그녀의 노래를 즐겨듣는다. <나의 아저씨>에서 보여준 이지안의 이미지와는 180도 바뀐 <호텔 델루나> 장만월 역으로 시청자들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오해로 천 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사랑을 부정하는 장만월(이지은 분)과 그런 그녀의 마음을 녹일 구찬성(여진구 분)의 이야기로 내용은 전개된다.
장만월은 한 남자에 대한 배신감과 도적단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연우, 그리고 동료들이 자신의 앞에서 처형당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슬픔으로 가슴에 한을 품는다. 혼자 살아남은 그녀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관에 담아 끌고 다니며 죽은 영혼이 머무는 달의 객잔을 찾는다. 그러다 간이 주막에서 마고신을 만나게 되고, 장만월의 이야기를 들은 마고신에 의해 월령주를 마신다. 이후 장만월은 불로불사가 되며 달의 객잔(현재의 호텔 델루나)의 주인이 된다.
“혼자 나이 먹어가면서 당신은 내 누이였고, 딸이었고, 손녀였습니다. 부디 언젠간 당신의 시간이 다시 흐르길 바랍니다.” - <호텔 델루나> 노지배인 대사
“잘 들여다보고 돌보다가 잘 보내봐. 신의 뜻대로. 내가 너의 마지막 손님이 돼줄게. 나를 보낼 땐 쓸쓸해 하지마.” - <호텔 델루나> 장만월 대사
“어쩌면 당신의 나무에서 지는 꽃들은 처음 나뭇잎 하나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떨어지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많이 무겁고 아파지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고 감당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두고갈 땐 두려워하지 마요. 이게 연약한 인간일 뿐인 내가 온 힘을 다해 지금 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 <호텔 델루나> 구찬성 대사
“사라지는 것에 아쉽고 슬프지 않은게 어디 있겠나. 꽃이 지면 다시 피어남을 꿈꾸듯이 그렇게 다시 살고,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해주거라 그것이 오만하고 어리석고 자기 연민에 빠진 아름다운 너희가 선택한 답이기를...”- <호텔 델루나> 마고신 대사
장만월은 오래전 사랑했던 남자의 진심을 알게 되어 모든 한을 풀고 그와 함께 이승을 떠나지만, 구찬성을 혼자 남겨두지 못해 다시 돌아온다. 둘의 사랑은 결국 해피엔딩.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동화를 본 듯한 기분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호텔 델루나>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사랑으로 결말을 맺은 드라마라 못 본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쯤 시청해 보기를 바란다. 특히, 사랑스러운 이지은의 패션만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할 테니 말이다.
호텔 델루나 촬영지 목포근대역사관
붉은색 벽돌이 멋스러운 언덕위의 건물 한 채. 멀리서 봐도 예사롭지 않은 이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다.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쓰인 이 공간은 <호텔 델루나>의 외관으로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달이 뜨면 보이는 망자들의 호텔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꽤 근사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물을 마주하니 촘촘하게 쌓아올린 적색 벽돌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 뒤로는 일제 강점기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곳은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일본영사관이었다. 이후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보존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수군 진영이었던 목포진의 역사부터 근대 역사까지 전시를 하고 있다.
<호텔 델루나> 촬영지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이정표와 푯말이 도로 군데군데 붙어 있고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태극기 망토를 두른 소녀상이 노란 꽃을 들고 쓸쓸하게 앉아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좌우대칭 사각형 모양의 건물로 중앙에 있는 현관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근대역사관 안에는 조선시대 수군 진영으로 설치된 목포진부터 개항, 일제강점기 항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고, 나무로 만든 냉장고, 손금고, 재봉틀, 축음기 등의 신식 생활용품도 함께 전시돼 관람객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목포근대역사관 뒤쪽으로는 방공호가 있다. 유달산 자락에 길이 92m, 높이 2m로 뚫은 인공터널로 1940년대 초에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일본인을 피신시키고 미군 공습과 상률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 민족을 강제로 동원해 만든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목포근대역사관 2관인 별관은 1관과 5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다. 이곳은 1920년도에 만들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로 근대 서양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제강점기 때 목포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오래된 공간에서의 시간여행
목포의 거리는 시간이 멈춘 듯하다. 특히 목포근대역사관이 있는 대의동은 예전 그대로인 것들로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간판 없이도 영업을 하는 상가가 즐비해 있고, 오래 돼서 바꿔야 하는 낡고, 빛바래고, 촌스러운 간판도 그대로 무심하게 걸려 있다. 어쩌면 대의동에서는 그게 당연한 풍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퉁이의 멋스러운 풍경을 간직한 ‘사슴수퍼마켙’(내부는 전시관으로 사용)과 슬레이트 기와지붕과 나무문이 매력적인 삼광목공소, 각종 농산물을 판다고 쓰여진 만덕상회는 지금 나무 공방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새로 생긴 커피숍도 이곳을 걷는 즐거움이 된다. 달달한 간식이 필요해 ‘유달동 로망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메뉴가 눈에 띈다. 바로 가래떡과 팥죽. 맛이 어떨까, 어떤 플레이팅으로 손님에게 전달될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십여 분. 참 맛깔스럽게 준비된 음식을 보고 잠시 숨을 고른다. 따뜻한 봄볕이 비치는 날씨 좋은 주말에 소중한 사람과 목포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꼭 즐겨보기를. <호텔 델루나>의 두 주인공처럼 그게 사랑하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함께 가면 좋을 목포 여행지 ‘시화마을’
산비탈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태로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좁은 골목과 낡은 계단은 어릴 적 즐겨 했던 숨바꼭질 놀이가 생각날 만큼 복잡한 구조로 얽힌다. 6월 민주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이한열(강동원)과 연희(김태리)가 연희네 슈퍼 앞 평상에서 시국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