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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화 : 지엔스 대표 정미순 지엔스

향기를 맡는 순간 그 향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결국 자신만의 향기를 갖는다는 것은 나를 설명할 특별한 무언가를 얻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러 가지 향료를 배합해 새로운 향을 만들고 이미지를 그려내는 직업, 조향사 정미순 지엔스 대표를 만나보았다.
글. 김민주   사진. 고석운
향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분석하는, 조향사
20세기의 여성 패션의 혁신을 선도한 가브리엘 샤넬은 이런 말을 남겼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다.” 단 1초 만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은 화려한 외모도 수려한 말투도 아닌 바로 ‘향기’이지 않을까. 국내에서도 향 산업에 있어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1세대 조향사, 정미순 지엔스 대표다. 그는 2002년부터 조향사 교육기관을 운영하며 수백 명의 후배 조향사를 배출하고, 조향 컨설팅·조향 박물관 등 관련 사업을 통해 국내 향 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향사는 향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서 향을 만든다고 하면 순수하게 알코올에 희석을 시킨 ‘향수’가 가장 스탠더드가 될 수 있겠죠. 또 향수뿐만 아니라 향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제품도 만들어요. 핸드크림, 보디로션, 비누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도 향이 들어가기 때문에 제품에 들어갈 향을 적재적소에 맞게 배합하여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실제로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향을 찾고 배우기 위해 지엔스를 방문하고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 업계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전공자와 제2의 직업으로 조향사를 선택한 사람이 이곳 지엔스에서 교육을 받는다. 또 일부 기업은 회사의 브랜딩을 위한 향수를 의뢰하고 연예인은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향수를 개발하기 위해 컨설팅을 받는다.
개성 강했던 우디 향수, 오랜 시간 사랑받아
정미순 대표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워낙 후각이 좋고 향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꽃과 풀을 따며 향과 늘 가까이했다. 그렇게 향에 흠뻑 빠진 유년 시절을 보내다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엄마 화장대에 있던 향수, 샤넬 No.5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에는 에스티로더 여사의 전기를 읽고 조향사가 되어 보자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하는 등 다년간의 경험을 쌓다가 마침내 대한민국의 1호 프리랜서 조향사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미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향은 무엇일까? 그는 하나를 꼽기 너무 힘들다며 웃어 보였지만 끝내 가장 처음에 만들었던 플로럴 계열 향수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시도했던 대중적인 향인만큼 주변의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향수는 대중화도 참 중요해요. 내가 만든 향수가 나만 좋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잖아요. 모두가 사랑하는 향을 만드는 것도 조향사의 자질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중적인 향수만 만든 것은 아니다. 우디 향수의 경우 지금은 대중화가 되었지만 정미순 대표가 조향사로 일할 초창기에는 워낙 개성이 강해 손이 가지 않는 향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해외 브랜드가 우디 계열 향수를 출시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중적인 향을 만들고 그다음 개성이 강한 웜홀 향수를 만들었어요. 우디, 머스크 계열의 향수인데 처음 출시했을 땐 우리나라 사람에게 익숙지 않은 향이다 보니 썩 좋아하진 않았죠.(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초창기에는 선호하지 않았던 향이 꾸준히 오랜 시간 인기를 이어오고 있더라고요. 그게 바로 니치 향수의 매력이 아닐까요.
조향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정미순 대표는 조향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자질은 ‘향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어를 배울 때 알파벳부터 배우듯이 향의 특성과 향취를 하나하나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지엔스에서는 기본단계에서 배우는 향이 50가지, 프로페셔널 단계에서는 100가지 정도의 향을 익히게 된다. 이후 100, 200, 400개 등 계속 적으로 늘어나 수많은 향을 익히고 조합하는 기술을 쌓게 된다.
“제자들이 향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역할이에요. 그러나 자유롭게 표현을 하기 전에는 기초부터 갈고닦는 훈련이 필요해요. 그 훈련 기간을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독창력과 자유로움을 구사할 수 있는 무기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죠.”
조향사로서 후임 양성, 컨설팅 등 향과 관련해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온 정미순 대표. 그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제주도에서도 작업실과 숍을 운영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자연에서 추출한 향을 인간의 힘을 보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인생 목표다.
“제주도에서 향수 박물관 설립을 준비하고 있어요. 기존에 서울에서 운영하던 갤러리를 제주에서는 좀 더 자연친화적인 느낌의 향수 박물관을 열려고 해요. 그리고 조향 작업도 꾸준히 할 예정이고요. 그러나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조향을 통해 저의 내면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또 모두가 향을 통해 힐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고요.”
사람은 누구나 향기를 남긴다.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가 각이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서 풍기는 고유의 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서 잊힌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향기의 매력, 정미순 대표는 오늘도 수많은 향을 디자인하며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있다.

인터뷰는 총12편의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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