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에서는 정겨운 향기기 묻어 있다. 물리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지만, 오래된 장소와 물건을 마주하면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다시는 못갈 시간이라 그런지 경복궁이나 삼청동을 방문했다면 이곳도 꼭 한번 둘러보길 바란다.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초입에 위치한 ‘추억의 거리’다.
글. 김효정 사진. 문정일
레트로 감성에 물들다
추억의 거리는 2년 전 쯤에 엄마랑 함께 왔었다. 엄마는 “옛 추억이 돋는다”고 말했고, 나는 “사진 찍기 좋은 배경이다”라며 즐거워했다. 화창한 날씨가 이공간을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우린 삼청동에 들렀다가 “궁에나 갈까?” 하는 마음으로 국립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입구에 경복궁으로 바로 통하는 문이 있어 그곳으로 가로질러 갈 참이었다. 그러다 추억의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곳은 방문객들을 위한 상설전시장으로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했다.
1960~70년대의 가난했던 우리의 삶과 일상을 담아놓은 거리는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억의 거리 초입에는 삼각지붕의 낡은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1930~70년대까지 운영했던 인쇄소를 그대로 옮겨왔다. 인쇄소 내부를 들여다보면, 활자 제조기나 활자판, 인쇄기 등의 물건을 볼 수 있는데, 유리벽이 있어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 가능했다.
인쇄소를 관람하고 나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추억의 거리가 펼쳐진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는 것은 사진관이다. 2년 전에는 사진관에 들어가 직접 사진 찍기도 가능했던 것 같은데, 코로나19로 인해 입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부족해도 정겨운 시절
다음 건물은 근대화 연쇄점이다. 뭔가 거창한 이름 같지만 실은 동네 슈퍼다.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이런 구멍가게만한 곳이 없었다.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과일이나 채소 등의 각종 식표품과 생필품이 가득했다. 기와지붕과 나무로 된 문이 멋스러운 공간.
아쉽게도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가게 문틈 사이로 진열된 물건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랜만에 보는 빨간색 돼지저금통과 OB맥주, 그리고 남양분유, 선반위에 가득 쌓인 국수가 눈에 들어온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왜 그렇게도 국수를 많이 먹었던지. 갑자기 엄마가 말아주던 설탕국수와 간장 국수가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도 엄마랑 같이 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래된 물건들과 영화 포스터, 그리고 흔한 달력까지. 그런데 놀랍게도 ‘미원’은 지금하고 모습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디자인도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가움과 고마움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당신의 추억엔 무엇이 남아있나요
‘담배도 팔아요.’오랜만에 보는 담배 간판. 살짝 녹이 슨 것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를 맞아 준 곳은 화개 이발관이다. 당시의 이발관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이곳은 중앙으로 난로가 놓여 있다. 난로 위로는 구리색 주전자가 올려져 있는데, 주전자에 끓인 따뜻한 물로 면도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는 걸 추측하게 한다.
이 이발관은 실제로 종로 소격동에서 1950년 후반부터 2007년 8월까지 운영했던 화개 이발관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소품을 활용해 꾸민 공간이다. 화개 이발관 맞은편으로는 국밥을 파는 식당이 있다.
가게 앞으로는 오래된 자전거가 눈에 띄는데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이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시골 어르신들도 잘 타고 다니지 않은 옛날 자전거.
근처로 약속다방과 고바우 만화방이 자리하고 멀리 장미 의상실도 보인다. 명동에 자리했던 장미의상실인데, 이곳은 1977년에 개봉한 <겨울여자>에 나오는 의상실 외관을 참고해 만들었다.
오래된 초등학교 건물도 보인다. 매 수업시간 마다 울렸던 종소리. 이제는 듣기 힘든 종치는 소리가 그리운 요즘, 투박한 학교 종을 이곳에서 만나니 더 정겨운 느낌이다. 이제는 초등학교가 된 초등학교. 오래된 교탁과 초록색 책상과 의자. 그리고 칠판.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곳에 올 때는 꼭 부모님과 함께 방문해보기를 추천하면서. 이곳에서의 추억과 소중한 시간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