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난 선배가 말했다.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모르겠어. 난 다시는 직장생활 못 할 거야.” 1인 출판사를 창업해 간신히 연명한다던 그의 푸념을 뒤로하고 라도 돈이 전부가 아닌 삶을 한 번쯤은 살아보는 것도 꽤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내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길까 싶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생각 다 접어두고 몸도 마음도 느리게 살아볼까 한다.
글. 김효정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의 속내
<마음>
글. 나쓰메 소세키 / 옮긴이. 송태욱 / 현암사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 마음은 1914년 도쿄와 오사카의 <아사히 신문>에 동시에 연재되었다. 소설은 총 세 가지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장은 나와 선생님이 만나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두 번째 장은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내려가게 되면서 생각하는 나와 가족의 관계를, 세 번째 장은 선생님의 과거 낙인과 스스로에게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고백하는 유서로 이뤄져 있다. 한 인간을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선생님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사는 고독과 괴로움, 변화에 따른 불안 등을 알게 된다. 인간의 내면과 본성, 그리고 삶과 인생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선다거나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모르면 수치인 것 같아서 거북했는데 요즘에는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거겠지.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
<불안>
글. 알랭 드 보통 / 옮긴이. 정영목 / 은행나무
“우리의 삶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불안을 맞아들이고, 또 그것을 떨쳐내는 과정의 연속이다”라고 이야기한 알랭 드 보통. <불안>은 우리 일상에 다양한 종류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는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는데,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을 들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종류 증 사회적 지위(status)와 관련된 불안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인간이 새로운 불안의 영역에 들어선 시기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에 따른 사회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구분되었을 때였다.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닌,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를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나 중요성을 따지며 불안이 생겼다고 본다.
“9세기 많은 개혁가들과 마찬가지로 칼라일이 원하던 것은 모두가 경제적으로 평등한 세상이 아니라 엘리트와 가난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불평등한 세상이었다. 칼라일은 말한다. 『유럽은 진정한 귀족제를 요구한다. 다만 이것은 재능의 귀족제가 되어야 한다. 가짜 귀족제는 지탱될 수 없다.』 칼라일이 원하던 것은-당시에는 아직 이 말이 쓰이지 않았지만-능력주의 사회였다.”
그렇게 거창할 것 없는 우리의 삶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글. 박완서 / 세계사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 작가 박완서의 10주기 기념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이 책은 따뜻하게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으로 구성된 그녀의 산문 35편을 모아 엮었다. 작고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책이 꾸준히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글이 가진 진솔함과 여운 때문이 아닐까. 힘겨운 삶이 안겨준 상흔을 글로 치유하고자 작가의 길을 걸었지만,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겪었을 내면의 은밀한 갈등을 짚어내고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여성평등에 대한 사회 문제를 잘 꼬집었다. 삶을 통찰하며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품어낸 그의 문장이 그리운 날이면 이 책을 펼쳐보자.
“달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쓸쓸할 대는 달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쁠 때는 달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와서 산동네 빈촌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때 달이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가.”
프로문구러의 아날로그 수집 라이프
<문구는 옳다>
글. 정윤희 / 오후의 서재
미니멀리스트가 되라고 이야기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윤희의 책은 나를 수집가의 세계로 이끈다. 책을 읽다보면 수집의 욕구가 자연스레 불타오르게 될지도. 어릴 적부터 펜과 문구에 매력을 느꼈던 그녀는 만년필, 문진과 북엔드, 포스트잇과 수정테이프, 지우개까지 애장품을 수집한다. 그녀는 단순히 문구를 수집한 것이 아니다. 문구 하나하나의 브랜드 히스토리, 그리고 문구에 담긴 자신의 사연을 더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다. 이 책은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문구 30개를 선정해 직접 쓴 글과 촬영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물건이 또 다른 이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새롭게 만들어진다.
“여느 향수처럼 탑 노트와 미들 노트를 품진 않았지만, 베이스 노트만으로도 은은하면서 은근한 향이다. 독서를 할 때 집중하기 좋다고 알려지기도 했으니, 릴랙스를 위한 용도로도 적당할 듯하다. 똑똑해 보이고 싶거나 책 많이 읽는 티를 팍팍 내고 싶을 때, 페이퍼 패션으로 박학다식의 향기를 뿜뿜 해도 좋을 듯하고, 오래 묵은 책들을 꺼내 바람을 쏘여 줄 겸 바닥에 좍 펼쳐두고 공중에 분사해 책에게 책의 향을 선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책은 읽어야 맛이라는 사실에 밑줄 좍!!”
한 번쯤 읽어봐야 할 8편의 짧은 SF소설
<목소리를 드릴게요>
글. 정윤희 / 오후의 서재
정세랑의 SF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이 살아가는 모습과 몰락해가는 인류의 문명에 대한 경고를 8편의 작품을 통해 그려낸다. 2010년 그녀가 데뷔하면서부터 2019년까지 썼던 거의 모든 SF단편을 모은 책으로 확고한 그녀의 스타일을 들여다볼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 마음이 무겁거나 심심할 때, 짝사랑 중일 때 일상에서 부담 없이 펼쳤다가 덮을 수 있는 책으로 가볍게 읽기 좋다. 작가는 장르문학을 쓸 때도, 쓰지 않을 때도 한 사람의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발행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 관심이 바깥을 향하는 작가들이 판타지나 SF를 쓴다고 생각한다는 정세랑 작가의 첫 SF단편집이다.
“우리는 다윈을 사랑했고 다윈은 지렁이를 사랑했다. 다윈의 마지막 저작은 지렁이에 대한 것이었는데 꽤 대중적 인기를 끈 책이었다. 덕분에 다윈이 지렁이의 지능을 시험하기 위해 수백 개의 종잇조각을 오려 지렁이 굴을 막았던 실험 내용이 알려졌고 나 역시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윈은 특유의 꼼꼼한 기록으로 지렁이들의 문제 해결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남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