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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화 : 존엄한 인생의 가치는 의사가 아니라 내가 만든다

코로나19로 병원 입원환자에 대한 면회가 전면금지 되어 있을 때 엄마가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파킨슨병으로 삼킴 장애가 있었는데 식사중 기도가 막혀 질식한 것이다.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며 일주일이 넘도록 중환자실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면회금지로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불안에 떨며 의사를 만났더니 “지금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한 달여의 병원생활 후에 퇴원을 했지만 엄마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에 황망했던 심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글. 안경숙(국민연금공단 지사장)
길어진 인간 수명, 그리고 준비해야 할 것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져 100세가 넘게 사는 세상이 되었지만 노후에 질병으로 겪는 고통이 두렵다. 평균수명은 83세인데 건강하게 사는 건강수명은 63세에 불과하다니 60이후에는 이런 저런 질병으로 시달리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2020년 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84%나 된다. 그중에 가장 많은 질병이 고혈압이고 그 다음으로 당뇨병, 고지혈증, 관절염, 신경통의 순이다. 이런 만성질환뿐 아니라 치매와 파킨슨병 같은 노인성 질환도 노년을 괴롭히는데,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3%이다. 열 명중 한 명은 치매를 앓는다는 뜻이다. 85세 이상이 되면 그 비율이 38.7%로 높아진다.
나이 들어가며 병에 걸리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노년에는 질병의 예방노력뿐 아니라 병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 일상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돌봄이 필요하다. 어디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여건인 경우 국가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간병비 부담 없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고령이나 노인성질환으로 혼자 힘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거나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돌보고 싶다고 해도 경제활동을 영위하면서 부모를 수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지금 은퇴시기를 맞은 세대들은 부모를 집에서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의 노후는 자식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노인실태조사에서도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요양 서비스를 받으며 살거나 돌봄 편의가 제공되는 요양시설에서 생활하겠다는 답변이 많다.
의료보험의 덕분으로 노인성 질환의 경우 산정특례를 적용받아 병원 치료비는 많이 감소하였지만 간병비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재정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에 걸리면 비참한 상황에 빠진다는 의미이다. 장기요양 1~2등급의 심한 거동장애가 있어도 요양보호사 지원은 하루 4시간밖에 받지 못한다. 간병인을 채용하는 경우 수입의 상당부분이 간병비로 지출된다. 보통 질병이 진행되면서 재가요양-데이케어-요양병원-요양원의 순으로 돌봄의 형태가 바뀌어 간다. 언론에서 부실한 요양시설의 돌봄 서비스를 접할 때는 이용을 망설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시설도 많이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낮에만 돌봄이 가능하고, 요양병원은 장기요양등급이 없어도 입원이 가능하나 요양원은 장기요양 1~2등급자가 입소할 수 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노인실태조사에서 좋은 죽음(웰다잉)에 대해 질문했을 때 많은 응답자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그리고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는 죽음’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사회는 죽음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고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을 쓴 한림대 김현아 교수는 “죽음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최악이자 최대의 사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일생일대의 사건에 대해 새 자동차 구입할 때보다도 준비를 덜 한다”라며 안타까워한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버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하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무의미하게 삶을 연장해선 안 된다. 2020년 조사에서 89.6%의 노인이 무의미한 연명을 반대했지만 실제 연명의료 중단 실천 비율은 4.7%에 불과했다. 사전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의사를 명확히 해놓지 않으면 마지막 긴급한 순간에 병원의 조치를 거부하고 연명중단을 결정하기는 정말 어렵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치료를 종결해야 할 순간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호스피스제도를 이용하여 고통을 완화하고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둘, 주변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작성하여 재산에 따른 분쟁을 피하도록 해야 한다. 가족이나 세상에 전달할 메시지를 의식이 온전하게 작동할 때 전달해 두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공증 등 법적 조치를 받아놓는 것이 좋다. ‘내 자식들은 절대 재산분쟁 같은 것을 할 아이들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분쟁의 씨앗은 깨끗이 없애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 죽음의 장소와 마지막 작별의 방법을 결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하지만 실질적으로 80%이상이 요양시설이나 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다. 리사 고이치가 쓴 책 『엄마와 보내는 마지막 시간 14일』에서는 ‘더 이상 고통스러운 투석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엄마를 딸이 집으로 모시고 온다. 투석을 중단했을 때 그녀가 살 수 있는 시간은 단 14일. 14일 동안 집에서 가족들의 돌봄을 받으며 지나온 인생을 정리하고 지인들을 한 명씩 불러 작별을 고한다. 죽음의 순간까지 자기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사람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었다.
노령인구가 점점 늘고 노화현상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데 우리는 아직 이 문제들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제는 노화, 질병, 돌봄, 죽음 같은 문제를 음지에서 꺼내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불안을 인정하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존엄한 인생의 가치를 만드는 모든 결정권이 의사나 병원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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