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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화 : 은퇴 후 살고 싶은 집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를 준비하라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노마드랜드>는 벤을 몰고 길 위에서 생활하는 Nomad(유랑자)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2008년 경제위기로 실직을 당하고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하거나 이런 저런 다양한 이유로 집을 빼앗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끼 식사를 하고 벤의 휘발유 탱크를 채우기 위해 고령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힘든 육체노동을 한다. 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 위로 나선 것이다. 정착할 곳 없는 불안정한 삶에서 몸 하나 겨우 눕힐 공간에서 자유와 평온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며 노후생활에서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글. 안경숙(국민연금공단 지사장)
평온한 주거환경을 찾아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퇴시기가 되면 ‘어디서 살 것인가’하는 고민을 한다. 집은 정신과 육체가 쉴 수 있는 삶의 터전이다. 은퇴를 하고 노년이 될수록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므로 안정된 주거환경이 더욱 중요해진다.
젊은 시절에 거주지는 직장과 아이들 학교로 가는 교통이 편리한지, 쇼핑센터나 편의시설이 가까이 있는지가 주요 선택조건이었고 아울러 재산으로서 투자가치를 갖추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했다. 최상의 주거환경에서 살기보다 불편도 감수하고 은행 빚을 갚으며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노년에 이르러 주택 담보 대출의 제약에서 벗어나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던 관행 때문에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이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 재산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나에게 가장 평온한 주거환경을 찾아서 노후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뇌 과학자 정재승은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 되며 위안을 받는지 생각해 보라. 역세권이나 학군, 투자 가치만으로 집과 건물을 바라보지 말고, 공간 속에 놓인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라며 신경건축학적으로 집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집값이 천정을 모르고 상승할 때 도심지에 보유한 아파트를 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집은 나이에 맞게 관리하기 딱 좋은 곳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고 자산으로 관리해왔던 집을 정리하여 노년의 신체와 활동반경에 맞는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심플한 삶’의 열풍을 일으킨 프랑스 작가 도미니크 로로는 “행복은 살고 있는 공간의 넓이에 달려 있지 않으며 집은 작을수록 노인에게 더 적합하다”라고 작은 집을 예찬했다.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집을 구하기
생계를 유지하던 업에서 은퇴를 하는 경우 어느 정도는 시간과 공간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귀촌이냐 도시거주냐, 아파트인가 단독주택인가, 대가족이 살 큰 집인가 부부만의 작은 집인가, 직접 집을 지을 것인가 기성의 주택을 구매할 것인가 정말 다양한 주거환경을 선택할 수 있다.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주거지를 옮겨 새로 집을 마련하는 등 평소에 시도하지 못했던 과감한 변화를 꾀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은퇴자들이 흔히 말하는 노후의 집에 대한 로망은 공기 맑고 경치 좋은 전원에 예쁜 집을 짓고 파란 잔디가 깔린 넓은 마당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는 장면이다. 대도시 인근에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들과 타운 하우스가 지어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장애요인 때문에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귀촌한 사람 중에 잡초와 벌레 때문에 못살겠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오히려 ‘전원생활은 젊었을 때 하는 것이 좋고 나이 들면 모든 것이 편리하게 갖추어진 도시생활이 더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연이 좋다고 무턱대고 전원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은퇴생활의 라이프스타일을 먼저 정한다음 그에 적합한 주거환경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집을 선택할 때 알아둬야 할 것들
도시에 살게 될 경우 노인들은 계단이나 문턱의 위험이 없는 집이 좋다. 거동이 불편하여 보행 보조기, 휠체어를 사용할 경우를 감안하여 2층 이상의 주택이라면 반드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어야 한다. 자신의 평생 꿈이던 1층에 상가를 낀 주택을 마련한 분이 무릎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어 정작 자신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면 아름다운 공원이나 조용한 주택가를 끼고 있는 지역을 선택한다면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동네를 산책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다. 좀 더 적극적이라면 자연을 집안으로 옮겨놓을 수도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꽃과 채소를 가꾸고 수족관까지 만든 집들도 있다. 아이들을 출가시켜 넓은 공간이 필요 없을 때 집의 평수를 줄여서 부부만의 스타일로 집을 꾸미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실을 북카페처럼 꾸며서 집안에서 커피와 독서를 즐길 수도 있다.
도시생활을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며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 번거롭게 느껴지는 중요한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동거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은퇴 후 동반자와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주거조건을 갖추어도 그 집이 결코 평온한 보금자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집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멋지게 꾸민 넓은 집에 잔디가 파랗게 깔린 마당과 텃밭은 끊임없는 관심과 노동을 필요로 한다. 집을 가꾸는 자체를 즐기는 성격에 건강한 몸이라면 아무 문제없지만 겉보기에 멋진 생활만 동경하고 큰 규모의 집을 관리하려면 집의 노예가 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주변의 광활한 자연이 다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주하는 공간은 작은 집이 오히려 바람직할 것이다. 크고 넓은 집보다는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 더 많은 행복을 줄 것이다.
그리고 새로 만난 이웃과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활방식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이웃과의 갈등 때문에 귀촌생활이 괴로운 나날이 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우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은퇴 후 주거환경은 생애 마지막을 보낼 곳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을 가지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상주 간병도우미의 원룸을 준비하는 것도 양로원에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조치가 될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잠시 왔다가는 ‘소풍’이라고 했다. 벤 한 대로 유랑하면서 자신만의 공간 두 평으로도 자유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어느 지역 어떤 집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 시간으로 그 공간을 채워 가느냐가 중요하다. 어차피 버리고 갈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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