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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화 : 알면 더 재미있는 인생, 배움은 끝이 없다

어느날 갑자기 동네 골목마다 아이스크림 판매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원이 없다. 꼬마들이 자유스럽게 들어가 바구니에 상품을 담아 기계 앞에서 삑삑삑 계산을 하고 나온다. 혼자 망설이며 지나치던 무인점포를 어느 날 딸과 함께 들어갔다. 두리번거리며 계산을 하는 경험을 해보고 나서야 자신감이 생겼다. 햄버거 가게, 잡화점, 프랜차이즈 카페마다 놓여있는 키오스크 기계부터 인터넷 예약 결재까지 나이든 사람들은 적응이 어렵다. 새로운 IT시스템을 익히지 않으면 일상에서 많은 불편을 겪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할 수밖에 없다.
글. 안경숙(국민연금공단 지사장)
은퇴 후에 느끼는 학습의 즐거움
학교에서부터 직장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생활 속에 살아왔다. 은퇴를 해서 사회생활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게 되면 골치 아픈 공부는 접어두고 자유로운 시간을 마냥 즐길 것이라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많은 은퇴자들이 새로운 학습에 열중하고 있다. 인생2막을 맞이하며 새로운 분야의 자격증에 도전하고 취업을 위한 기술습득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실용적인 학문뿐 아니라 문학, 철학 같은 인문의 세계에 깊숙이 빠진 신중년들도 있다. 실질적인 지식활용과 더불어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뇌를 활동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바야흐로 평생학습의 시대다.
은퇴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내일 배움 카드’제도이다. 지역, 직종별로 취업기술 및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이 마련되어 있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기본 강의도 제공한다. 개인별로 300~500만원 한도 내에서 훈련비의 45~85%까지 지원된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인기과정으로 한국폴리텍대학 신중년 특화과정이 있다. 전국의 12개 캠퍼스에서 1년 과정으로 기술전문인을 전액 국비로 양성하여 취업으로 연결시키고 있는데 높은 취업률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신중년에게도 인기다. 그 밖에도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대학, 대기업들에서 중장년의 평생학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
재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기술을 습득해야할 필요도 있다. 메타버스, AI모델, 자율주행, 가상화폐 등등... 생소한 용어들을 매일 듣게 되는 시대다. 손가락으로 쓱쓱 밀면 화면이 바뀌는 스마트 폰이 처음 나왔을 때 버튼을 꾹꾹 눌러 전화를 걸던 어르신들은 새로운 폰으로 갈아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 두려움을 떨치고 스마트 폰 사용법을 배운 어르신들은 새로운 세상에 적응했지만 거부한 사람들은 IT문맹 신세가 되었다. 지금 노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을 높이는 학습을 해야 한다. 키오스크를 편안하게 사용하고 인터넷쇼핑이나 금융에도 익숙해지면 나이가 들어도 일상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세대와 소통을 즐기는 것도 은퇴자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2030세대의 롤모델이라고 불리며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씨는 52년생이다. 67세이던 2년 전 후배들의 권유로 패션 경험과 정보를 나누는 유튜브 활동을 시작하며 인생 2막을 활짝 열었다. 그녀는 자신만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유튜버로서 젊은 세대와 활발한 소통을 하며 오랜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전해준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 활용하고 시대에 적응한 결과 당당한 ‘할머니’로서 젊은이들에게 삶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에 자유로워지기 위한 어른의 공부
재무적으로 노후 대비가 되어 있는 경우에도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학창시절 공부의 강제성에 시달린 기억이 있는 사람들은 은퇴 후 새롭게 학습을 해야 한다는 부담에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어른의 공부법』 저자 센다 다쿠야는 ‘어른의 공부는 세상에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공부’이므로 즐거워야 할 수 있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놀이에 빠져 있는 아이처럼 한 곳에 몰입하고 열중하는 공부’가 진짜 어른의 공부라고 했다.
은퇴 후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을 배우며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인 수입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배움을 통해 행복한 노후를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풍부한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악기연주, 그림그리기, 요리, 목공 등을 새롭게 배우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 분야도 정말 다양해졌다. 배우는 방법도 학원이나 문화센터에 국한되지 않고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커뮤니티를 구성해서 배우기도 한다. 강사를 초빙해서 학습을 한 후 회원들끼리 서로 재능을 전달하고 익히는 방법이다. 인터넷을 플랫폼으로 하여 다양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유튜브 등을 통해 비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어느 때보다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다
젊은 시절 생활을 위해 일에 집중할 때는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왔다. 은퇴를 하게 되면서 ‘나는 누구인가?’ ‘뭘 위해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은퇴 후에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문학의 세계에 빠지게 된 사람들이 있다. 책이나 강의를 통해 문학, 철학, 역사 등 인문학을 공부하고 함께 모여 토론을 하는 모임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메이지대학 교수인 사이토 다카시는 『내가 공부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수단으로써의 공부를 ‘호흡이 짧은 공부’라고 하고 반면에 문학, 철학, 역사, 물리, 수학, 음악, 미술 등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라고 했다. “호흡이 얕은 사람들은 일상의 작은 스트레스에도 힘들어하지만 호흡이 깊어지면 몸 깊숙이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어 심장에 활력이 생긴다. 공부는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과 같아서 공부를 통해 내면에 다양한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생태계가 형성되면 어지간한 어려움에는 쉬이 꺾이지도 시들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학 공부야말로 몸과 기억이 점점 쇠퇴하는 노년이 되었을 때 위기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설 수 있기 위해 꼭 필요한 공부라 할 수 있다.
이제는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거치며 의무적으로 해왔던 공부가 아닌 좋아서 하는 공부, 평생을 즐길 수 있는 공부를 할 때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지식을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세대와 소통하는 것이 노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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